밤 11시가 넘은 시간, 도시의 소음은 멀어지고 방 안에는 낡은 스탠드의 따뜻한 노란 불빛만이 남아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씨름했던 피로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듯하다. 습관처럼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우려내어 홀짝인다. 은은한 향기가 긴장된 신경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듯하다. 창밖에서는 간간이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달빛이 방 안을 은은하게 비춘다.

오늘 하루를 되짚어본다.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던 풍경, 지하철 안에서 마주쳤던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 사무실에 도착해 쏟아지던 업무들.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스쳐 지나 보냈을까. 문득, 점심시간 잠시 들렀던 공원의 푸르른 잔디밭과 그 위를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오른다. 그 짧은 순간의 평화로움이 오후 내내 작은 위안이 되었었다.
책상 한켠에 놓인 작은 메모장을 펼쳐본다. 오늘 하루 떠올랐던 짧은 생각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둔 몇 줄의 글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 작은 기록들은 오늘이라는 하루의 소중한 흔적들이다. 미국의 작가, 아나이스 닌은 말했다. “우리가 쓰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 안에 쓰여 있다.” 어쩌면 이 작은 메모들은 내 안의 역사를 조금씩 기록해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창밖의 매미 소리는 여전히 귓가를 맴돌고, 따뜻한 차는 어느새 식어버렸다. 문득,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가 떠오른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과 깨달음을 찾아가는 이야기들. 그때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 또한 그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캐나다의 작가, 앨리스 먼로는 말했다. “일상적인 삶은 특별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그것들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어쩌면 오늘 하루에도 수많은 특별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소설책이 놓여 있다.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때로는 그의 기쁨에 함께 웃고, 때로는 그의 슬픔에 함께 눈물짓기도 한다. 타인의 삶을 엿보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늦은 밤, 조용한 방 안에서 책장을 넘기는 시간은 고요한 사색의 시간이다.
이제 슬슬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책을 덮고 스탠드를 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으니, 오늘 하루의 작은 흔적들이 잔상처럼 떠오른다. 평범하지만 소중했던 순간들, 스쳐 지나갔던 작은 감정들. 내일은 또 어떤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새로운 흔적들을 만들어나가게 될까. 조용한 밤, 편안한 마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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